>15년 넘게 평범한 프로그램 개발자로 커리어를 쌓아온 나는,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에서의 퇴사 통보 이후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인생 후반전을 맞이한 현실에서 육체는 점점 약해지고 지쳐가고 있었고 다음단계는 사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다음 여정을 이어가야 할지가 참 답답했습니다.
그런 생각과 마음을 기록으로 정리해보고 나의 사랑하는 자녀인 가람, 나엘이, 또 인생의 선,후배들에게 공유할 story 가 있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정리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나의 솔직한 생각과 감정을 적고, 때마다 도우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길 바라고, 개발자 커리어를 잠시 내려놓고 방향을 수정해서, 블루컬러 현장도 체험하고 나중에 돌아보면, 지금 이런 시기가 반드시 필요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때가 올 것 같습니다. 만든 산출물이 있다면 대략적인 기술적 내용들도 기록해 보려 합니다.
chapter #1은 이 모든 것이 시작된 지점부터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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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 15년, 그리고 통보
2011년 1월부터 2026년 3월까지, 나는 약 15년이 넘는 기간을 평범한 프로그램 개발자의 경력을 쌓으며 살았다. 화려하지도 않았고 특별히 두각을 나타낸 적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코드를 짜고, 요구사항을 맞추고, 버그를 잡고, 이해력이 늦어 학습속도도 느린특성에 수많은 날들을 야근으로 하루하루를 채웠다.
그러던 어느 날,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회사 '인터OO'의 대표님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 "OO님은 PM으로 일하기에는 퍼포먼스가 다른 멤버들에 비해 낮고, 주니어 포지션으로 있기에는 경력상 애매해 보여서... 정말 죄송하지만 저희와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 역시 그 순간 담담했다. 화가 나기보다는 대표의 입장이 이해가 됐다. 나는 4월까지 근무하는 것으로 회사와 협의했고, 실제로는 4월의 절반만 출근하고 나머지는 보상휴가와 정식휴가를 끌어모아 사실상 쉬는 일정을 잡았다. 그렇게 15년의 개발자 커리어에 마침표를 찍었다.
## 첫 1주 — 허락된 휴식
퇴사가 확정되고 첫 일주일은, 솔직히 좋았다. 늦잠도 자고, 자전거를 타고 밀양 삼랑진까지 다녀오기도 하고, 온천천 운동도 하고, 그 동안 미뤄뒀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았다. 마치 오랫동안 참아왔던 숨을 몰아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자전거 타고 밀양 삼랑진에 - 이 때만 해도 룰루랄라...
## 2주 차 — 막막함이 찾아오다
2주 차부터는 마음의 여유는 사라지고 기분이 달라졌다. 막막하고 답답했다.
'이제 뭘 하지?'
마흔 후반을 향해 가고 있었다.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예전만 못하고, 아이들은 아직 한창 손이 가는 나이였고, 벌어놓은 돈도 없었고, 내 명의로 된 집도 없었다. 당장 2~3달 뒤의 생계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프로그램 개발자일을 다시 찾아볼까?...' 수학이라면 그야말로 '수포자' 출신이고, 언어적으로 특출난 재능도 없다고 늘 생각해왔다. 그런데도 지난 15년은 결국 수학적, 논리적 머리를 계속 쥐어짜야 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돌아보니 나도 모르게 많이 지쳐 있었던 것 같다...
## 목사님의 제안 — "배달, 같이 해볼래요?"
다른 가족이나 친지들과는 염려를 끼칠까 이런 고민을 나누지 못했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가장 만만한 상대는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이었다. 목사님도 가정 경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얼마 안되는 성도들에게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어서 틈틈이 배달 알바를 할 예정이라며, 같이 한 번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셨다.
이상하게도 그 제안이 싫지 않았고 호기심이 생겼다. 복잡한 로직을 설계하고, 요구사항을 분석하고, 회의나 구축 시 논리로 부딪히는 일에서 벗어나 단순하고 몸을 쓰는 일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어느새 커져 있었던 것 같다.
> "그거 재밌겠네요! 한 번 저도 도전해 볼게요!!"
난 그렇게 대답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순수한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그 동안 모니터 앞에서만 살아온 내가, 과연 도로 위에서는 어떤 사람이 될지...
## 친구를 찾아가다 — 기장에서 시작된 오토바이 배달
며칠 뒤,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오랜 친구를 찾아갔다. 기장에서 배달 일과 배달전문 음식점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친구였다. 사정을 이야기하니 친구는 흔쾌히 자신의 SYM 오토바이를 빌려주었다.
준비 과정은 생각보다 착실했다.
- 라이더 운전자 온라인 안전교육 이수
- 7일간 이륜차 보험 가입
- 배민앱을 통한 실제 배달, 총 5일간의 실전 경험
친구의 SYM 오토바이
친구에게 간단한 설명과 주의사항을 듣고 첫 배달을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뭐가 뭔지 몰라 1건 배달하고 10분쯤 숨을 고르고, 또 한 건 하고 다시 쉬는 패턴을 반복했다.
요구사항을 분석하고 시스템을 설계하던 머리로, 이번엔 골목길과 신호와 배차 알림을 읽어내야 했다.
배달완료사진!
## 숫자로 남은 첫 5일
첫날은 점심부터 시작해서 저녁까지 딱 10건을 채우고 그만두었다.
온몸이 긴장으로 뻣뻣했다.
둘째 날은 조금 더 자신감이 붙었다. 하루 종일 매달려 12건, 벌어들인 돈은 30,075원이었다.
그다음 3일간은 조금 더 익숙해진 몸으로 49건을 완주했고, 105,092원을 손에 쥐었다.
숫자를 다시 들여다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뭔가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소득은 너무 적다...'
배달하다 여유 부리기... (하니까 소득이 적지)
## 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
이 이야기는 성공담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일기 같은 기록을 통해 그 여정을 따라간다.
배달 오토바이의 적은 소득에서 시작된 고민이 다시 다른 일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한숨과 눈물들은 나에게 무엇이었는지를 앞으로 하나씩 풀어놓으려 한다.
비슷한 갈림길 위에 서 있는 개발자, PM, 혹은 이제 막 커리어를 다시 세워보려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공감이 되길 바라고 혹시 이 여정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물들이 필요한 분이 있다면 연락 주셔도 좋다.
다음 편에서는 배달 알바를 그만두고 다른 job을 찾게된 사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어진 또 다른 인연들의 이야기를 이어가겠다.